이조500년 자취를 찾아서..

전주이씨(全州李氏)1

우수영 2010. 11. 1. 11:29

전주이씨(全州李氏)

시조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지낸 이한(李翰)이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시조로부터 22, 즉 한() 21대손이다.

그러나 성계의 고조부인 목조(穆祖) 안사(安社) 이전의 사적(事蹟)은 전혀 기록에 전해지지 않는다. 안사(安社)는 원래 전주(全州)사람이었는데, 그 곳 지주(知州:지금의 지사)와 사이가 나빠 강원도 삼척(三陟)으로 옮겨 갔다가 얼마 뒤 지주(知州)가 다시 그 곳으로 부임해 오자, 가족을 데리고 바다 건너 간도(間島) 지방으로 가서 원()라의 다루가치(達魯花赤:지방관)가 되었다.


그의 아들 익조(翼祖) 행리(行里:성계의 증조부), 또 그 아들 탁조(度祖) (椿:성계의 조부)도 때때로 두만강 지방의 천호(千戶)로서 원나라의 벼슬을 했고, 춘의 아들 환조(桓祖) 자춘(子春)도 원()나라의 총관부(摠管府)가 있던 쌍성(雙城:영흥)의 천호를 지냈다.


자춘(子春)은 공민왕(恭愍王)의 북강(北彊) 회수운동에 내응하여 쌍성(雙城) 함락에 결정적인 공을 세워 이 지방의 만호(萬戶) 겸 병마사(兵馬使)로 임명되었다. 성계(成桂)는 영흥(永興)태생으로, 22세 때 처음으로 고려에서 벼슬을 했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동북면의 병마사(兵馬使)가 되어 원군(元軍)과 왜구(倭寇)토벌에 공을 세워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이르러 이때부터 고려말 중앙정권의 중추에 등장하게 되었다.

 
전주이씨(全州李氏)의 분파(分派) 122파로서 거의가 왕자대군(王子大君:적자)과 왕자군(王子君:서자)을 파조(派祖)로 하고 있으며, 시대 구분에 따라 세 갈래로 나눌수있다. , 이태조의 고조부인 안사(安社)의 상계(上系)에서 갈라진 파, 안사 이후 이태조(李太祖) 이전에 갈라진 파, 이태조의 후손으로 왕자대군과 왕자군을 파조로 하는 파이다.

 
안사(安社:18) 이전의 분파(分派)로는 시조 한() 14대손인 단신(端信)을 파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 15대손 거()를 파조로 하는 평장사공파(平章事公), 17대손 영습(英襲)을 파조로 하는 주부동정공파(主簿同正公派), 안사의 종손 윤(允卿)을 파조로 하는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한의 21대손 귀을(歸乙)을 파조로 하는 문하평리공파(門下評理公派) 등이 있다.

안사 이후 이태조 이전의 분파(分派)로는 안사(安社)의 아들인 안천(安川안원(안풍(안창(安昌안흥(安興)5대군파(五大君派), 행리(行里)의 아들인 함령(咸寧함창(咸昌함원(咸原함천(咸川함릉(咸陵함양(咸陽함성(咸城) 7대군파(七大君派), (椿)의 아들인 완창(完昌) · 완원(完原) · 완천(完川) ·완성(完城) 4대군파(四大君派), 자춘(子春)의 아들이자 태조의 서형제(庶兄弟)완풍군파(君派)와 의안대군파(義安大君派) 등 도합 18개의 파가 있다.

태조의 후손 분파(고종 이전까지)는 일반적으로 99(25대군·74)로 알려져 있지만 미취졸(未娶卒), 즉 미혼으로 죽었거나 무후(無後), 즉 후사(後嗣)가 없는 대군이 20명 정도가 되므로 실제로는 그 수가 줄어든다.

조선의 왕권은 전주이씨(全州李氏)인 왕족(王族 · 宗親)을 주축으로 하고 왕대비·왕비·왕세자비의 동성친(同姓親:외척)과 이성친(異姓親), 그리고 왕녀의 배우자와 그 근친 등 광범위한 혈연관계를 왕권의 일차적인 토대로 하여 발전·유지되어 왔다.
따라서 왕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골육간의 다툼은 조선 500년을 통해 거의 끊일 사이가 없었다. 역사적으로 전주이씨(
全州李氏)는 그 방대한 씨족기반 위에서 정치권력 내지는 정치세력의 중추를 이루어왔다.

전주이씨(全州李氏) 100여 파 중에서 으뜸가는 명가(名家)는 밀성군파(密城君派:, 세종의 아들)로서 6명의 정승(政丞) 3대의 대제학(大提學:홍문관, 예문관의 정2품벼)을 배출했으며, 덕천군파(德泉君派:후생, 정종의 아들)가 부자 대제학 등 3명의 대제학과 영의정(領議政:의정부의 으뜸벼슬, 1) 1명을 내어 밀성군파에 버금간다.

그 다음으로는 3명의 정승(政丞)을 배출한 광평대군파(廣平大君派:, 세종의 제5), 정승 2명을 배출한 선성군파(宣城君派:무생, 정종의 아들) 정승1명과 많은 문·무관을 배출한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 태종의 제2) 등이 뛰어나고, 무림군파(茂林君派:선생, 정종의 아들)와 덕흥대원군파(德興大阮君派:, 선조의 생부)는 무관(武官)집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전주이씨(全州李氏)의 후예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주이씨 대동종약원(全州李氏大同宗約院)측에서는 대략 200만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100여 파 가운데 후손이 가장 번창하는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가 으뜸이고 광평대군파(廣平大君派덕춘군파(德泉君派밀성군파(密城君派)

 

·양녕대군파(讓寧大君派)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