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싶은 곳
조용헌(원광대학교동양학대학원 교수)
하동군 악양(岳陽)이 살아 보고 싶은 곳이다. 뒤에는 1000m가
넘는 지리산의 영봉(靈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동네 앞
으로는 지금도 맑은 강물을 유지하고 있는 섬진강이 흐른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이다. '산남강북(山南江北)'에 양기가
뭉쳐 있다고 본다. 배산임수는 산의 남쪽이요, 강의 북쪽에 해당
한다. 지리산에서는 산나물이 나오고, 섬진강에서는 은어와 재첩
이 나오고, 남해 바다에서 생선 나온다.
먹을 것이 풍부하며 겨울에는 따뜻하므로 양지 바른 창문밑에서
책 보기도 좋다.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등장하는 구름과 안개,
석양, 눈 내리는 풍광이 볼 만한 즐거움을 준다.
동네 뒷산인 형제봉에 만 올라가도 지리산과 섬진강의 호쾌한
풍광을 즐길 수 있어서 근심 걱정이 털어진다.
거창군 북상면의 강선대(降仙臺) 근처도 좋다. 완전 산골 동네라는
느낌이 온다. 아궁이에 장작을 때면서 살 수 있는 동네다. 덕유산
자락에 깊이 파묻혀 있다는 산골 느낌이 도시와 아파트에 질린
현대인들을 치유해 준다. 인근 위천면의 수승대(搜勝臺)까지 둘러
볼 수 있다. 계곡도 좋은 것이다. 더운 여름에 계곡물은 진가를
발휘한다. 역대로 영남의 선비들이 좋아했던 산세다. 기백산(箕白山),
금원산(金猿山)의 바위 암벽에서 나오는 골기(骨氣)도 힘을 준다.
전북 부안군의 모항 근처도 살아보고 싶은 곳이다. 언덕에 집을
지으면 서해 바다의 뻘밭과 섬들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석양의 붉은 낙조는 열 받아서 뭉친 화기(火氣)를 내리는 데 최고
다. 뒷산인 변산(邊山)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만고만한 수십개의
바위 봉우리들은 중국 무협지에 나오는 듯한 경치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은 조선 땅의 승지(勝地)에서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